한국이야기/인천

인천 자유공원과 이곳 저곳

호구시절 2011. 9. 14. 18:53

차이나타운을 넘어 자유공원으로...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사진이 어디로 가고...이 사진만 남았나..

 

 

 

탑을 둘러 보고 자유공원으로 나오면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자유공원 광장이 나온다.

응봉산 전체가 공원인데 서울 파고다공원보다 몇 년 앞서 만들어졌고, 인천항 개항 뒤 만국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불리웠다고... 

 

그 후 일본이 다른 나라의 거류지(조계지)를 없애면서 서공원이라고 불렀다는

슬픈 이야기. 자유공원이란 이름은 1957년부터...

 

 

'다그라스'라고 되어 있다...

 

 

아래 돌에 이름과 관련한 역사가 쓰여 있군...

 

 

자유공원에서 인천항쪽으로 내려 오면 제물포구락부가 있다...

마찬가지로 월요일이라 내부 구경은 할 수 없었고...

 

 

1901년에 제물포에 거주하던 미/영/독/러 등의 외국인 사교장으로 사용되었다니...

 

 

그리 건물이 커 보이진 않은데 당구대도 있었다고 함.

전쟁 때는 장교 클럽이기도 했다고 하며...

 

 

아래 사진처럼 당시의 이 건물 분위기가 어땠을지 매우 궁금하다...얼른 좀 더 복원해서 1901년도의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들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인천의 이런 근대건축물들을 잘 복원해서 테마화하면 정말 멋진 곳이 될텐데...언제쯤 되려나. 기대된다.

 

 

아직 더 복원을 해야겠지???

 

 

인천 역사자료관도 들어갔더니 당췌 어디를 봐야하는지 안내판이 전혀 없어서 두리번거리다 나온 케이스..

 

 

명패만 붙어 있고 뭘 봐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곳.

 

 

설명은 잘 되어있다. 하지만 내부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단 말이다...아무것도 없는 곳인가?

 

 

조계지 경계 계단...

상해에서도 조계지라는 곳을 가 보았는데...타이캉루도 그렇고 다들 서구의 열강들이 쳐 들어와서 나름

나와바리를 형성하고 살던 곳. 앞서 말한대로 개항장에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리던 구역인데, 중국 상해에는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하수도 냄새가 무지나고, 한국은 냄새는

안 나는데 건물이 남은게 별로 없다. 그 점이 다소 아쉽지만...지금 남아 있는 것들이라도 잘 복원해서

역사를 공부하는데 책 외에도 배울게 있다는 걸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1983년 2월 4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인천중국 조계지에 대해 중화루라고 하는 음식점 사진과 화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주 백년이 되었는데 위축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와 해방 직전인 초창기에

8만명이던 화교 인구가 1983년 당시 3만명으로 줄었다는 이야기...

흥미로운 이야기는 기사에 따르면 한 인류학자가 조사한 결과인데, 본격적인 유입은 1882년인데,

임오군란 직후로 청이 일본 세력을 견제키 위함이다...라고. 군인 3천명과 상인 40명이 화교의 시초.

1883년에 209명이 1910년에 27년동안 11800명으로 불었단다. 당시 화교의 특징은 청의 후원을 입고,

산동성 출신의 독신남들이며, 고향이 가까와 자주 왔다 갔다 하므로서 한국에 동화되지 않도록 했다는..

하지만 1949년 중국 본토의 공산화로 인해 다소 위축되어 져 갔고, 1950년 이후 한국의 반화교 정책으로

무역이 줄어 들고 음식점으로 주업을 변경하게 된다는 것...그 외 매우 자세한 내용이 기사로 실려 있지만

너무 내용이 많다...하지만 매우 분석이 잘 된 기사이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참으로 재밌으면서도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간직한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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