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당으로 유명한 유적지이나 방문하던 날은 녹우당이 공사중이라고 출입이 안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입장료는 다 받는다... 멀리서 왔는데 너무하는거 아닌지...
어차피 서울서 떠날 때 녹우당이 공사중인지 알 수 없으니 요금을 감면해주는 것이 맞는거라 본다. 고작 매표소에서 녹우당은 공사중이라 붙여놓으면 그게 불만인 사람은 가라는 이야기인데 다섯 시간 차타고 온 사람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 않은가...
1982년 동아일보 기사를 보니 녹우당에서 국내 최고의 미인도를 발견했다는 기사...
조선 중기 미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준다고...
녹우당은 해남 윤씨 종가로 15세기 중엽의 건물. 윤선도는 정치적으로 패배 후 은거할 곳을 찾아 다니다 천하의 승지라며 택한 곳이라고...
녹우당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형식을 잘 보여준다고 한다...
원래 99칸의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55칸...
이곳과 완도 보길도를 오가며 오우가 등 시조문학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오우가는 1642년 윤선도가 지은 시조. 물, 돌, 솔, 대, 달을 보며 부단, 불변, 불굴, 불욕, 불언 등의 규범을 노래... 좌절을 안겨준 현실에 무상을 느끼며 변하지 않는 자연의 다섯 벗을 찬양하였다...
윤선도는 조선 중기의 문신, 시인... 치열한 당쟁으로 유배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나 여러 학문에 통달하였다. 특히 시조에 뛰어나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의 쌍벽을 이룬다고...
이 곳의 대표작은 국보인 윤두서의 자화상. 윤두서는 정선, 심사정과 더불어 조선 중기 화가 3재중 한 명. 다산의 외증조부...
보길도는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고산이 세상을 등지겠다며 제주도로 향하다 폭풍을 만나 일시 대피하려던 섬.
녹우당에서는 1982년 거문고가 발견되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녹우당 서고에서 발견된 것인데 한쌍으로 고산이 타던 거문고라고...
어부사시사는 윤선도가 65세되던 해에 벼슬을 버리고 보길도의 부용동에 들어가 한적한 날을 보내면서 지은 노래...
녹우당 주변에는 고산이 심었다고 하는 수백년된 비자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비자나무는 푸른 바늘잎나무로 일본 남부가 원산지. 사찰 근처에 심은 비자나무가 많아 일본에서 가져왔다고 하기도...
비자나무 씨는 약용으로 널리 쓰이고 그 즙은 기름 대용으로 이용...
녹우당은 집 뒤 비자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비내리는 소리가 들린는 듯 하여 녹우당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효종이 사부였던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지어준 집의 일부를 옮겨와 사랑채로 만들고 녹우당이라 했다.
고산이 은으로 만든 나전장을 쓴다는 모함을 받고 사실 확인을 위해 세번이나 해남에서 서울로 올라갔던 자개문갑이 있다고 한다...
저런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째 요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과학과 여러 학문이 발전해도 인간의 마음이나 욕심은 그대로인가...
6.25 때는 유물들을 모두 독 속에 넣어 뒷산 비자나무 숲에 파묻어 화를 면케했다는 자손들이다...
고산의 거문고에는 아양이라는 글이 써 있는데 산과 바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중국에서 거문고 명연주자에게 쓰던 표현이라고.
산처럼 높고 그윽하게 바다처럼 깊고 고요하게 탄다는...
윤두서의 그림평론집도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윤선도의 아들이며 조선 중기 대표적 화가 윤두서가 조선, 중국 화가들의 작품평을 기록해 놓은 기졸이 1982년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 중기의 화가들에 대한 평과는 상당히 다른 면이 있다고 한다.
옛 화가에 대한 독특한 평가와 묻혀있던 작가, 작품 기록이고...
윤두서의 자화상도 국보인데 47년간의 짧은 생애를 살았고 선비화가였다.
윤두서는 사대부이면서도 가난한 서민과 불쌍한 노복을 보살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자화상은 조선시대에 많지 않은데 윤두서의 자화상은 박력과 묘사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작이라고...
이 곳에는 일본여도라는 일본 지도가 있는데 윤두서가 숙종 때 그렸다고 하는 것이라는데... 다산의 외손자도 일본여도를 그렸다... 일본과의 관계를 당시에도 밀접하다는 걸 알 수 있다는...
1977년 동아일보에 보면 일본여도의 제작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다. 윤두서가 30대에 일본의 재침설이 나돌아 적의 실세를 알아야 한다며 지도 제작을 결심했다고...
풍족한 가산을 바탕으로 호남 일원에서 40명의 똑똑한 장정을 모아 일본에 보낼 첩자 교육을 했고 서울에서 일본어 선생을 데려와 1년간 일본어를 가르치고 준비해 일본에 잠입시켰다고...
3년 뒤 각자 맡은 지역의 지도를 만들어 모두 귀환하고 이들의 보고서를 토대로 일본여도를 완성...
1990년 신문에 보면 미인도가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가 되돌아온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윤두서의 미인도는 혜원의 미인도보다 1백년 이상 앞선 미인도의 원조라고...
일본에는 우리나라보다도 우리나라 유물이 많다고 하는데... 고려불화가 우리는 10점 미만인데 일본에는 2백점 가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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