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야기/전남

전남 나주 금성관

호구시절 2013. 2. 5. 11:15

나주 곰탕을 먹으러 하얀집에 갔다가 바로 앞에 금성관이 있어서 들렀다. 나주금성관이라고 하는데 1373년에 공민왕 시절 금성군의 정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1603년 선조 때 크게 중수하고 1884년 고종 때 삼창을 했고 1963년 보수, 1973년 해체 복원공사를 했다고 한다. 객사는 고려,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했던 것으로 관사 또는 객관이라고 함.

 

 

객사는 고려 전기부터 있었는데 외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객사에 묵으며 연회를 가졌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에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기도 했고 사신의 숙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나주금성관은 일제시대에는 내부를 고쳐 청사로 이용했고 1976년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 선생이 의병을 모아 출병식을 가졌으며 이 곳은 전남지방에 많지 않은 객사 중 하나로서 규모가 웅장하다.

 

 

나주 금성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그리 많지는 않다. 아무래도 관련된 자료가 많이 없는 듯...

 

굉장히 넓고 웅장한 규모에 비해 전해지는 자료가 별로 없다는게 좀 서운하기는 하다.

 

 

이곳은 벽오헌이라고 적힌 곳. 관찰사가 나주에 방문하면 업무를 하던 곳이며 이름은 벽오동나무가 가까이 있어 붙혀진 이름이라고

 

 

마루가 넓어 여름에는 시원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될 듯하다. 겨울엔 춥지 않을까...

 

 

원래 이름은 동익헌이군요.

 

 

곳곳에 비치된 소화기. 웬지 부족해 보이는데...

 

 

나주목은 고려시대 나주지역의 행정단위였고 조선시대에도 전라도 남부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고려 초에는 호족의 자치에 맡겨지고 있었는데 중앙 집권화 정책으로 중요 거점 지역에 12목을 설치했다.

 

 

그 목에 목사를 파견하고 체계적인 행정조직을 시작했다고 한다. 12목 중 하나인 나주목은 전라도 유일의 목으로 지방의 중심지가 되었다...

 

 

2007년에는 금성관 앞에서 수문장 교대식도 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의 복식과 군례문화를 볼 수 있는 행사였다고.

 

 

2003년 기사에는 금성관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어 건립시기가 논란이었으나 고려 초기에 건립되고 복원이 잘못되었다는 주장. 발굴조사 결과 최초의 화폐인 996년 발행된 건원중보와 함께 초기 청자인 해무리굽이 출토되었다고...

 

 

2007년 신문기사에는 금성관 등이 사적지로 지정될 수 있는지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조선 중세시대의 흔적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지역이 나주를 제외하고 그리 많지 않아 필요성이 많다고...

 

 

나머지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