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데이인 바로 앞에 있는 5.18 자유공원에 들렀다. 방에서 내려다 보이는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상무대 법정과 영창을 원래 자리에서 100미터 옮겨 복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관련 자료와 영상물을 전시하는 자유관을 신축...
시민들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법정과 6개의 감방으로 이루어진 영창이 있다.
그 밖에 연행자들이 고문과 조사를 받았던 헌병대 중대 내무반과 임시취조실로 사용한 헌병대 식당이...
고문수사와 재판을 지휘한 계엄사합동수사본부 특별수사반이 임시로 사용했던 헌병대 본부사무실이 있다.
올해가 벌써 32주년이다.
얼마 되지 않은 일 같은데 30년이 훌쩍 지나가 버리다니...
입장료도 없고 관람객도 나 혼자뿐인 쓸쓸한 곳이었다...
일단 이 곳은 절대 없어지지 않고 자손 대대로 남겨져 누구에게나 교훈을 주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멀리 보이는 묵고 있던 호텔과는 대조적인 모습.
내무반도 역시 강제 연행해 온 사람들이 넘쳐나 고문과 구타가 가해지던 곳이다.
무고한 시민들에게 군인이 가하던 폭력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가. 당시 군대의 무모함이...
나라를 지키라고 쥐어준 총과 각종 무기를 국민에게 사용한 것이 정말로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짓.
인권의 무덤이었던 헌병대 본부사무실.
...
당시 광주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군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남 및 광주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운동이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고 전두환 신군부가 최규하 과도 정부를 유명무실하게 한 후
정승화 계엄 사령관을 대통령 시해의 용의자로 체포하면서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12.12 사태 발생...
신군부가 정권을 잡으려고 함에 국민들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계엄 철폐를 주장하며 시위.
5월 17일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학생 체포, 휴교령 등 대대적 탄압을 시작...
전남대생이 학교에 들어가려다 계엄군에 폭력으로 저지당하고 시민들이 합세하여 희생자가 발생.
이것이 광주민중항쟁의 시작.
5월 19일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고 계엄군의 장갑차와 착검한 소총으로 시위대 진압.
5월 20일 수만의 시민이 군경저지선을 뚫고 시청건물 장악. 계엄군은 모든 광주 외부로의 통신을 장악.
밤 11시경부터 시민에게 계엄군의 총격이 가해짐. 비극의 시작. 말도 안되는 국가의 폭력.
5월 21일 군의 시민에 대한 발포로 수십명 사망. 시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소총 등으로 무장.
5월 22일 계엄군이 도청에서 물러나고 수습위원회에 의해 수습을 시도하였으나 군의 거부로 결렬.
27일 계엄군의 대대적인 시민에 대한 폭력으로 많은 사망자 발생.
이 사건이 국민들의 여러 인식 변화가 일어나고...
1988년 6공화국 출범 직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됨. 11월에는 청문회 개최.
1995년 5.18 특별법 제정과 1997년 국가기념일 지정.
전두환, 노태우는 95년 구속되었으나 97년 사면되어 98년 복권됨.
전두환은 1964년 하나회를 만들어 이미 정치군인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고...
10.26 사태 이후 하나회 소속 군인들이 장군 진급이 불리하게 되고 자신의 월권 행위가 문제가 되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김재규 내란사건 관련혐의로 불법 연행하는 등 하극상을 통해 1인자가 됨...
신군부세력이 군사정권을 세우려 하자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무력진압으로 정권을 만들어 냄.
1980년 8월 최규하대통령 하야 후 육군대장으로 예편.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선거 단일 후보로 나서 11대
대통령이 됨. 7년 단임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강제해직을 단행.
1981년 민정당 총재가 되고 간접선거로 치러진 선거에서 12대 대통령에 당선.
12대 대통령에 정식 취임하여 5공화국 정부를 출범. 15개월만의 군사쿠테타 정권을 마무리.
6공화국 초기 여소야대 상황에서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에
직면. 이에 1988년 대국민 사죄와 함께 재산헌납을 발표하고 백담사 은둔.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유혈진압과 비자금 사건으로 1995년 구속되어 사형 구형받았으나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및 추징금 선고 받음.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확정 후 나흘 뒤 김영삼 정부의 특별 사면으로 풀려나고 1998년 복권됨.
사면 :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형의 집행을 면제해 주거나 형 선고의 효력을 없애주는 조치.
복권 : 형의 선고나 파산으로 인하여 상실 또는 정지된 일정한 자격을 회복시키는 제도.
5.18 사건의 진상규명은 1988년 국회청문회를 통해 시도되가 무산되고 5.18 피해자와 단체들이 수차례
고소, 고발했음에도 검찰은 기소유예와 공소권 없음의 결정을 내림.
대통령의 특별법 제정 지시로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 헌법재판소가 특별법의 합헌 결정을 내려 수사 시작...
사면의 명분은 국민대통합. 경제난국 극복.
이 곳을 둘러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라를 위한다는 진정성이 무엇인지도...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
착잡하다. 죽은자는 말이 없고 죽인자도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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