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에 있는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능인 헌릉, 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능인 인릉..
헌릉은 태종과 원경왕후를 같은 언덕에 무덤을 달리하여 안장한 쌍릉...
인릉은 순조와 순원왕후를 같은 언덕에 합장한 무덤...
원경왕후가 1420년 태종보다 일찍 세상을 뜨자 태종의 명으로 대모산 기슭에 왕후의 능을 조영함...
1442년 태종이 승하하자 세종은 원경왕후의 능 옆에 봉릉을 따로 만들어 아보지를 모시고 쌍릉 조성함...
능원에는 두 개의 신도비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손상된 원래 신도비와 1695년 하나 더 증설하여 세운 것...
왕릉의 신도비는 태조의 건원릉, 정종의 후릉, 태종의 헌릉, 세종의 영릉까지 세웠다가 그 이후에는
완전히 폐지했는데 현재 왕릉의 신도비는 건원릉과 헌릉에만 볼 수 있으며...
순조는 1834년 승하하여 1835년 파주 교하 구후 장릉 국내에 안장하였고 능호를 인릉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풍수지리상의 불길론이 대두되어 천장을 결정함...
1856년 인릉은 현재의 위치인 내곡동 헌릉 서쪽 언덕으로 천장됨...
1857년 순원왕후가 승하하여 인릉에 합장...
태종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로서 아버지를 도와 조선왕조를 세웠으며 1, 2차 왕자의 난에
승리하여 왕위에 올라...
헌릉은 무인석, 문인석 등이 일반 능에 비해 많다...
올해 10월 30일 조선일보에 보면 조선의 궁궐, 왕릉의 가격에 대해 다루었다...
헌인릉은 22억 5036만원으로 되어 있다...
1984년 7월 20일 경향신문에 사적찾아 한나절이라는 칼럼에 대모산 헌인릉에 대해 다루었다...
헌릉앞 비각 속엔 태종의 일생을 기록한 신도비가 있다. 임진왜란때 왜장이 쇠몽둥이로 깨뜨리자...
갑자기 천둥번개가 일며 비석의 깨어진 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려 크게 놀란 왜장이 쇠줄로 비를
얽어매고 사죄하느 제사를 올렸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인릉은 원래 김포에 있었으나 철종 때인 1857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능입구의 이조농장에선 칠면조 구이와 오리고기 요리를 즐길 수 있다...재밌는 기사...
한편 1989년 6월 23일 한겨레신문에는 헌인을 주변 비닐하우스 철거라는 기사가...
헌인릉 주변 개발제한구역에 불법으로 음식점을 차려 놓고 영업해 온 비닐하우스 135동이 철거...
헌인릉 관람포인트를 읽어 보면,
인릉의 문무인석 4기의 생김새가 각각 다르다고 소개했는데...한쪽만 볼 수 있어서 어떻게 다른지 볼 수
없었다...
인릉의 곡장 뒤 잉 부분은 꿈틀거리는 것처럼 봉분을 향하고 있다는데 이 부분도 뒷부분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아 직접 보기가 어려웠다...
헌인릉의 오리나무 숲은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경관이 뛰어나다고 되어 있는데
오리나무 숲이 어디인지 안내판이 없다...
홍살문에서 가운데 난 돌 길은, 높은 쪽이 신도, 낮은 쪽이 어도...
마지막으로 혼유석 밑 하전석의 네모난 홈 속에는 태종우가 고인다고 되어 있는데 이게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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