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야기/서울

서울 선릉

호구시절 2011. 10. 8. 18:29

근처에 돌잔치에 갔다가 들러 보고 온 선릉..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선정릉 또는 세 개의 능이 있어 삼능공원이라고도 했다는...

 

 

조선 9대 임금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 무덤인 선릉, 11대 임금 중종의 묘 정릉이 있다...

 

 

보통 선정릉보다는 선릉으로 많이 불리우지...

1495년에 선릉을, 1530년에 성종의 제 2계비 정현왕후의 묘를 안장...

 

 

정릉은 1562년에 원당에서 이 곳으로 이장됨.

역시나 임진왜란 때 파헤쳐졌고,,, 현재는 사적 199호.

 

 

임진왜란 때 일본놈들이 파헤쳐 버려 현재는 시신이 없다.

일본 애들은 남의 나라 특히 우리나라 침략을 즐기고 와서는 사정없이 우리것들을 파헤쳐 버린다.

하이에나처럼...

 

 

한편으로는 최희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임진왜란 당시 선정릉을 훼손하려는 것을 막아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대되었다고...

 

 

오늘은 날이 좋아 그런지 주말이라 그런지 출사도 많이들 나왔고,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초등학생들이

현장학습을 많이 나왔다...

 

 

입장료는 1천원, 차를 가져오면 주차료도 내야 함.

중국의 사적지 입장료에 비하면 매우 저렴...

 

 

역사문화관은 매우 작아서 뭘 본다던가 감상하기 보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지식을 익히는 것...

 

 

지난 겨울에 갔다가 너무 추워서 다 보지 못하고 나왔었는데 오늘은 다 볼 수 있었다...

 

 

서울에 있어서 그런지 지방의 능보다도 웹상에 소개되는 자료들이 매우 부족하다...

 

 

성종은 수양대군인 세조의 손자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중종의 능은 침수로 인해 이 곳으로 몲겨왔으나 이 곳 역시도 장마에 침수가 잘 된다고 하네...

그래서 강남구청과 문화재청이 지금도 침수 관련으로 저수장치 시설과 관련 업무로 논의를 하고 있다고...

 

 

중종의 묘는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다...물론 조선의 왕릉은 모두 규격화가 되어 있어 특별히

다를 것이 없기는 하지만...

 

 

근데 한가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선릉 주변이 유흥업소로 많이 알려져 있다는 거...

아파트가 주변에 있는거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유흥업소가 왕릉 주변에 있다는 것은 옛날처럼 갈비집이

있는것과는 개념이 다른 것 아닌가...

 

 

예전 신문을 찾아보니 1975년 5월 1일자 경향신문에 선정릉 일반에 공개한다고...

 

 

기사인 즉,

문화재관리국은 1일부터 서울성동구 삼성동에 있는 선정릉(사적 199호)을 일반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관람료는 어른 50원(단체 30원) 어린이 30원(단체 20원)이다. 선정릉에는 이조 성종과 계비의 능인

선릉과 이조 중종의 능인 정릉이 있다. 면적은 6만여펑이다.

 

 

기사 중 재미있는 것은 예전에 삼성동이 성동구에 속해 있었다는 것과, 관람료 50원...

가만 생각해 보니 성동구가 예전에는 무지하게 컷겠구나...관람료 50원은 현재 1천원이니 20배 인상...

36년이 지난 지금 20배...다른 물가에 비해서는 인상률이 작은 편???

 

 

그리고 이조라는 표현...이씨 조선...

지금은 그냥 조선시대라고 하지?

 

 

1980년 동아일보 3월 25일자 신문에는 선정릉이 침수된 기사를 냈다.

하수도 물이 능안으로 넘쳐 중종의 묘인 정릉의 홍살문이 잠겼다고 함...참 희한한 일이 아닌 수 없다...

 

 

이러한 원인은 그 전해에 서울시가 하수도 공사를 중단해서 그렇다고...

거기다 주민들이 스레기까지 갖다 버려 주변이 매우 더럽다고 기사는 전하는데...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30년 전에는 많았던 모양...

 

 

1985년도 3월 22일 경향신문에는 어른 300원, 어린이 160원의 입장료와 입구에 널따란 주차장이 있다고

기사가 남...지금의 3분의 1 가격.

 

 

선정릉이다 보니 정현왕후에 대한 설명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 성종의 계비라는 소개와 연산군의 생모인 왕비 윤씨가 폐출되고 디음해 11월  왕비로 책봉됨...

후일 중종이 되는 진성대군을 낳았다고...

 

 

유네스코 문화유산 선정에 걱정을 많이 한 곳이라고...

왕릉 지척까지도 도로가 생기고 높은 빌딩도 많아 문제가 되지 않을까 했다는데 오히려 주변 땅값에

놀라 잘 지켰다나...

 

 

성종은 부인 12명에 16남 12녀를 둠.

왕비는 3명...정비는 공혜왕후며 영의정 한명회의 딸로 후사가 없었다.

 

 

공혜왕후가 후사없이 사망하고 윤기견의 딸 윤숙의를 왕비를 삼아 그 유명한 연산군을 얻음...

윤씨의 투기가 심해 왕의 얼굴을 할퀴어 폐위당하고 사약이 내려졌다고...

 

 

이것은 연산군 폭정의 계기가 된다...

후에 계비 정현왕후가 비로소 왕비로 책봉되고...

 

 

허나 성종의 여성 편력이 매우 심하였으며,

이에 관개하게 대처하여 어진 왕비로 칭송되어짐...

 

 

하지만 성종이 너무 일찍 죽고 연산군의 폭정에 시달렸으나 반정으로 자신의 친자식이 중종이 되어

편히 살다가 69세로 사망했다...

 

 

아쉬운 점은 선정릉이 오래된 능임에도 불구하고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이 그닥 아늑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유는 숲이 울창하지도 않고...바닥에 흙이 너무 많이 보인다...먼지가 많다는 얘기지...

그리고 나무들이 울창한 것득도 없고 너무 출입금지 구역이 많아...

 

 

1966년 1월 1일자 경향신문에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기사도 있다.

그 해가 말띠 해인데 백말띠에 누가 유명한 사람이 있는가 하는 기사다...

 

 

 

기사를 보면...

이조때 4명의 말띠 왕비가 영광을 누렸고 ...

이조 9대 성종의 왕비 정현왕후는 세조 임오년에 출생한 말띠. 왕비가 된 후에도 중종 왕과 공주 3명을

낳고 70까지 장수했다...

재밌는 기사다...

 

 

1990년 1월 1일자 동아일보 또한 말띠해의 언급에 지면을 할애했는데, 말띠 여자가 팔자가 사납다는

이야기...하지만 왕비가 4명이나 말띠였으며 그 중 정현왕후가 포함이 된다는 기사...

 

 

암튼 텔레비전 사극의 테마로 자주 등장하는 왕비께서는 명성만큼이나 왕이나 백성들을 두루 살피고

사셨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땅값이 비싸다고 했는데,

신문을 찾아보니 이 곳은 다른 왕릉에 비해 능역이 매우 좁고 주변이 고층 빌딩으로 포위가 된...

 

 

해방 이후 역대 정권, 특히 박정희 정권 때 능역의 많은 부분들이 민간에 팔렸다고...

어쩐지 모양이 이상하더라니...

 

 

암튼 여러 곡절을 통해 2009년에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 3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조선왕릉

40기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고...

 

 

개인적으로는 수로왕릉이 훨씬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