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영릉은 두군데. 세종대왕능과 효종능...
1970년 신문에 민족의 성군인 세종대왕의 영릉과 웅대한 북벌을 계획했던 효종대왕의 영릉 일대를 성지 또는 성역화하려는 움직임이 여주 군민의 열의속에 번져가고 있다고...
1970년에는 일제 때 헐어버린 재실을 복원하고 기념탑과 능입구의 현문을 건축...
1971년에는 보호담 설치와 전기 가설... 기념관 및 교육관, 기념광장 신설...
1972년에는 관리사무소를 짓고 조림 작업을...
당초 광주 대모산에 있던 세종릉을 현재의 영릉으로 옮긴 것은 1469년... 그의 붕어 19년 후.
당시 지관 박상의가 천릉할 곳을 찾아 답사중 이 곳에 이르러 한 묘막에서 소나기를 피하는데 뭊득 비가 개며 구름 사이로 뻗는 한줄기 햇빛이 닿는 곳에 명당이...
지관은 이 곳을 잡아 기왕에 서있는 묘를 이장시키고 세종대왕을 모셨다고... 전설에 의하면 처음 묘를 썼던 촌부의 자손이 왕이 될 것이었으나 이장되어 그 꿈이 사라졌지만 세종릉이 이리 옮겨져 조선조의 수명이 2백년 길어졌다고...
일제 대 민족의 상징 영릉을 폐허화시키고 어귀에서 능으로 이르는 경내도로를 폐쇄하고 재실과 수복청을 헐고석의를 무너뜨린다...
그 때 헐어버린 재목은 당시 읍장이 사서 민가를 지어 아직 남아있다는데... (지금은 아니겠지만...)
나라에서는 지관을 시켜 서울에서 백리 안의 여러 곳을 능 자리로 찾게 한다... 백리는 나라에서 대게 임금의 능을 백리 안에 모시는 관례가 있기 때문...
광주 이씨의 산소는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그 고장에서 번족하던 광주 이씨는 그 뒤로 점점 줄어갔다고 하는데...
박상의라는 사람이 그 자리를 잡아줄 때 산소를 쓰되 석물을 하지말라고 했는데 광주 이씨 자손들이 무시하고 석물과 묘막을 지어...
역대 왕릉 중 최고의 명당은 영릉이라고...
태종 때 과거에 급제해 형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지낸 이인손의 묘가 있었다고 하는데...
재실은 홍살문 밖에 제관이 머물며 제례를 준비하던 곳... 1970년 복원.
능 앞에 흐르는 개울을 금천이라고 하는데 금천교는 홍살문 앞에 설치한다고... 1930년대 없어지고 2008년 복원.
홍살문은 능 정면 앞에 세원 붉은 칠의 나무문... 신성한 곳을 알리는 의미...
정자각은 제례를 드리는 곳인데 건물 모양이 한자 정자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 부르는 이름... 정짜각?
수복방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2009년 동아일보 기사를 보았다. 문화재청장이 숭모제 후 국회의원과 숯불, 버너로 오찬을 했다는...
수복방은 제기를 보관하거나 능을 지키는 관리, 노비가 거처하는 곳... 1977년 복원.
영릉비는 1745년에 건립되었는데 조선국 세종대왕 영릉 소헌왕후 부좌... 왕비는 왼쪽에 모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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