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야기/경북

경북 김천 직지사

호구시절 2014. 1. 30. 17:14

경북쪽은 잘 안오게 되었지만 어쩌다...

 

 

 

김천은 예로부터 교통 요충지였다. 이런 지세 덕에 황악산은 남한 땅의 가운데에 자리 잡았다는...

 

 

황악의 황은 오방색의 가운데 색을 상징한다고...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는 황학산이라고 표시. 학이 많이 몰려와 붙은 이름이라는데...

 

 

대동여지도와 택리지 등 옛 문헌에는 황악이라고 적혀 있다는... 김천시와 직지사도 황악산이라 쓴다.

 

 

직지사는 418년 신라 눌지왕 때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아도 화상이 창건...

 

 

직지는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 따왔다고... 마음을 바르게 볼 때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임을 깨닫는다는.

 

 

또 다른 설은 아도 화상이 구미 도리사에서 황악산을 가리키며 저 산 아래에도 절을 지을 길지가 있다고 해서 직지로 불렸다고...

 

 

세번째 전설은 고려 때 능여 화상이 절을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측지하여 직지로 불렀다는 설...

 

 

능여 화상은 고려 태조 왕건의 건국을 도왔고, 사명대사도 이 절에서 출가...

 

 

일주문은 천년이 넘은 싸리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출불전을 모신 비로전은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병화를 모면했다는데 비로전 안을 봤을 때 처음 마주친 불상이 자신의 모습을 닮았다고...

 

 

대웅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나는 만세루는 통로 높이가 2미터도 안된다. 조선의 억불정책에 항의해 높이를 일부러 낮춘 것이라는...

 

 

직지사의 탑은 문경의 도천사에서 모셔온 것인데 대웅전 앞에 두 기가 있고 비로전 앞에 한 기가 있다...

 

 

직지사는 1500년이 된 절이다. 천년이 아니고...

 

 

1965년부터 불사가 시작되어 34동을 신축하고 31동을 보수하여 65동의 전각이 들어서는 대가람의 면모를 1995년에 갖추게 되었다고...

 

 

황악산직지사 현판은 송하 조윤형이 1770년에 쓴 것.

 

 

송하는 우리나라의 서체인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에게 글씨를 배웠다고 한다...

 

 

송하는 벼슬을 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1766년 글시로 벼슬길에 올랐다는데... 정조가 총애한 인물이기도 하다고.

 

 

그림에 정선과 김홍도가 있고 글씨에는 조윤형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고...

 

 

이외에도 송하는 진주 촉석루 편액, 마곡사 심검당 편액 등을 남겼다고...

 

 

조선의 2대 왕 정종은 태조의 둘째 아들 방과... 1차 왕자의 난이 수습되고 왕위에 올랐고 재임 2년 후 보위를 방원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정종은 다른 곳에 안치되어 있던 자신의 태실을 직지사 대웅전 뒤편 북봉으로 옮겼다고 한다...

 

 

태실은 왕실에서 산모가 태아를 출산한 뒤 나오는 태반을 묻는 장소라고...

 

 

직지사는 풍수적으로 마니산, 태백산 문수봉, 오대산 적멸보궁과 함께 기를 폭포수처럼 분출하는 생기처로 알려져 있다...

 

 

정종의 태실은 풍수에서 최고의 길지로 알려진 뱀이 먹이를 찾아 내려오는 형상의 머리 부분 혈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사두혈에 태실을 옮긴 덕분인지 정종은 정안왕후와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지만 나머지 7명의 부인 사이에 15남 8녀를 두었다고...

 

 

정종은 직지사를 수직사찰로 지정해 태실 수호의 소임을 맡겼다... 직지사의 주지는 수직군의 소임을 수행하는 승려들의 수장이기도 했다고...

 

 

덕분에 직지사는 조선초부터 시작된 숭유억불의 모진 세월 속에서도 비교적 순탄하게 사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왕실은 태실을 보호하고자 직지사 주위 30리 내 벌목과 수렵과 경작을 금했다고...

 

 

그 덕에 넓은 영유지를 확보해 직지사에서 12킬로미터나 떨어진 김천 시내 법원과 구화사까지가 직지사의 영유지였다고...

 

 

정종의 태실은 현재 서삼릉에 있는데 조선총독부가 조선 왕실의 정기를 차단하기 위해 1928년 전국 각지의 명당에 매장되어 있던 왕실의 태 53위를 옮겼다고...

 

 

정종의 옛 태실 흔적은 안양루 앞 태석과 청풍료 마당에 전시된 태실의 난간석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불교의 도량을 사찰 도는 가람이라고 부르는데 사찰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상가람마.

 

 

상가람마가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승가람마로 표기되고 이를 줄여 가람이라 불렀다...

 

 

사는 인도 승려 가섭마 일행이 낙양에 들어와 정사를 지어 백마사라고 부른 것이 시초... 절은 우리나라에서만 불린다.

 

 

아도화상이 선산 모례의 집에 숨어서 살았는데 모례가 우리말로 털례로 변하고 이후 덜, 절로 변했다고...

 

 

도 사찰에 와서 절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지만 정설은 없다.

 

 

만세교를 지나면 직지사 사적비가 나오는데 5개의 비석이 있고 글은 조종저가 지었고 글씨는 낭선군 이우가 해서체로 썻다고...

 

 

17세기에 수십 년의 불사를 마무리하고 사찰의 형세와 정통성을 정립해 안팎에 드러내기 위해 사적비를 건립했다는.

 

 

일주문의 두 기둥 중 왼족 기둥은 천년 묵은 싸리나무이고 오른쪽은 천년 묵은 칡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조사 결과 느티나무라고...

 

 

연대는 숙종 때인 조선 후기 건물로 확인되었고...

 

 

금강문은 어떤 스님의 부인과 관련된 전설을 간직한 곳이디고 하다...

 

 

직지사는 선종의 돈오돈수를 상징적으로 잘 조화롭게 조성한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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