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야기/전북

전북 고창 고인돌 유적지

호구시절 2013. 11. 10. 15:28

화순에서의 고인돌 유적지가 너무도 좋았기에 고창에서도 기대를 많이 하고 갔다. 하지만...

 

 

 

강화와 화순의 고인돌유적과 함께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이 공원은 보존 관리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고창은 국내 최대 규모의 지석묘군. 고인돌 447기가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의 고인돌 중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것이 유일하다고... 한반도에는 4만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 이는 전 세계의 모든 고인돌을 합친 숫자보다 많다...

 

 

고인돌은 사람들의 생활과 민족과 문화가 이동한 경로를 알려주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지배자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 돌로 한 것은 고인돌을 만들기에 좋은 석재료가 많이 있기 때문...

 

 

농경을 시작하고 보다 정교한 도구를 사용하면서 집단 내 권력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그 산물이 바로 고인돌... 고창의 고인돌은 매산 기슭을 따라 곳곳에 놓여 있다...

 

 

이 곳 고인돌 모양은 남부 지방에서 많이 발견되는 형태로 굄돌이 땅속에 들어가 있는 바둑판식 또는 개석식 형태...

 

 

유럽에는 기원전 5천~2천년의 거대한 지석묘와 선돌 유적이 남아 있다고... 특히 프랑스 지석묘는 3백50톤이나 되는 암석을 지하에서 캐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영국, 포르투갈, 이집트 등 유럽 각지에 분포돼 있는 거석 문화는 수천, 수만 명의 노동력과 전문기술자가 거석 제작에 동원 되었음을 보여준다...

 

 

표면의 무늬그림이나 태양의 정점과 연계되는 돌의 배치 양식들은 신석기 시대의 종교적인 풍습에 대한 중요한 해석 기호가 된다고 한다. 종교 과학 건축기술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박물관에는 고인돌 시대 당시 생활 모습도 잘 재현해 놓았는데... 우리나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 구석기 시대부터이나 구석기인들은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고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기틀이 이루어졌다...

 

 

신석기시대의 주거 형태는 수혈주거로 지면에 구덩이를 깊이 파고 평면을 만들어 그 위에 천막이나 지붕을 만든 공간... 농경경제를 정착한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강이나 바다를 낀 완만한 구릉의 경사면에 작은 마을을 형성...

 

 

청동기 시대 사람들도 신석기시대와 마찬가지로 주로 수혈주거 형태인 움집에서 생활... 구조는 둥근 모양이 없어지고 신석기후기부터 등장한 직사각형 움집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고...

 

 

움집은 땅을 파고 둘레에 기둥을 세워 비바람을 막기 위한 이엉을 덮어 만들었고 중심부에는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을 설치... 화덕 옆에는 저장 구덩이 있는데 취사를 하는데 필요한 것을 보관한 것으로 추정...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석기는 간돌검으로 점판암이나 혈암 등을 갈아서 만든 칼... 마제석검이라고도 한다. 청동기시대가 되면 금속으로 된 도구와 꾸미개 등이 등장한다. 청동기라는 명칭 자체는 금속 재질이 이용된 시기를 의미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널리 이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금속은 귀한 재료였고 이를 가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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